백세명의 커리어 스토리

소를 키우던 사람이
매출을 운영하기까지.

소를 연구하고 닭을 키우다가, 보험과 소프트웨어를 팔았습니다. 일터는 달라졌고, 예전 일터에서 배운 것이 다음 자리에서 다시 쓰였습니다.

한우 연구종계장보험·B2BSaaSRevOps

그때는 사람을 설득하거나 무언가를 파는 일이
저와 안 맞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브런치북 기획 「소를 키우던 SaaS 영업부장 이야기」의 첫 장면에서.

01

대관령 · 한우 연구

소의 등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던 일

첫 직장은 대관령의 국립축산과학원이었습니다. 대학원에서 생물통계유전학을 공부하면서 한우를 연구했습니다. 소의 체위를 재고 기록했고, 소의 등에 초음파를 대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보기 어려운 등심 안쪽을 살폈습니다.

소의 육질 등급은 도축한 뒤에야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개체를 다음 세대로 이어갈지 결정하려면 그 답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아야 했습니다. 연구실에서 설계한 일이 축사에서는 손으로 기록하고, 살피고, 기다리는 일이 됐습니다.

그때는 사람을 설득하거나 무언가를 파는 일이 저와 맞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대관령에서 연구하던 시절은 제 커리어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결혼을 준비하며 정규직 일자리가 필요해졌고, 좋아하던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02

종계장 · 생산관리

내가 키운 닭이 알 낳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다음에는 소 대신 닭을 키웠습니다. 종계장의 육성장에서 병아리를 돌보고, 자란 닭을 산란 농장으로 보냈습니다. 제가 있던 육성장은 16만 마리 규모였고, A·B 구역에 8만 마리씩 들어왔습니다.

육성장에는 알을 받는 시설이 없습니다. 스물세 주쯤 키워 초란을 낳기 전에 다른 농장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몇 달을 붙어 키워도 그 닭이 알 낳는 모습은 제 자리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일의 순서라고 생각했습니다.

훗날 세일즈 조직에서 리드를 발굴하는 사람과 계약을 마무리하는 사람을 나눴습니다. 그때 육성장이 떠올랐습니다. 기회를 키워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일에도 이름과 기준이 있어야 했고, 마지막에 계약한 사람만큼 앞에서 기회를 만든 사람의 수고도 보여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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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숫자와 사람을 함께 보는 일

평균을 보면 놓치는 것들

계사 한 동에는 닭이 만 마리쯤 있었습니다. 전부 체중을 잴 수 없어서 다섯 구역에서 백 마리씩 표본을 뽑았습니다. 평균뿐 아니라 중위값과 분포를 보고, 어느 구역이 다른지를 살폈습니다. 한 구역의 체중이 계속 낮으면 온도나 물, 사료가 나오는 자리를 확인했습니다.

생물통계가 왜 필요한지는 계사에서 저울을 들면서 더 잘 알게 됐습니다. 같은 평균 안에도 다른 사정이 있었습니다. 영업 조직의 숫자도 누가 얼마나 했는지와 함께, 그 사람이 어떤 시장과 고객을 맡고 있는지를 봐야 읽혔습니다.

사람을 맡는 일은 숫자를 읽는 것보다 어려웠습니다. 처음 농장을 맡았을 때 경력이 훨씬 긴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양쪽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고, 그걸 잘 관리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커리어를 돌아볼 때 그 장면도 함께 남겨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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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보험 · 공공입찰 · B2B

손에 잡히지 않는 가치를 설명하는 사람

생명보험을 팔면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눈앞에서 작동시켜 보일 수 없는 상품을 설명하고, 고객의 상황을 듣고,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이후에는 공공입찰·건설 분야의 B2B 솔루션을 팔았고, IT 기업의 세일즈 프로젝트를 운영했습니다.

사업개발과 고객관리, 프로젝트 운영을 맡으며 제가 하는 일의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처음 대화를 여는 일부터 다음 담당자에게 정보를 넘기는 일까지, 각자의 일이 다음 사람에게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피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쌓인 관점은 지금도 같습니다. 고객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주고, 약속한 가치가 실제로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일. 제가 말하는 매출의 시작은 그 아이디어가 누구에게 어떤 쓸모가 있는지 함께 알아가는 데 있습니다.

05

SaaS · 영업 조직 · RevOps

제가 빠져도 이어지는 일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협업 소프트웨어 플로우에서는 초기 영업 조직의 일원으로 파이프라인과 영업 프로세스를 만들었습니다. 고객에게 기능을 설명하는 것과 고객이 실제로 제품을 쓰게 되는 것 사이에는 할 일이 많았습니다. 워크숍과 온보딩을 통해 그 간격을 좁히는 일도 영업의 일부로 다뤘습니다.

그리팅에서는 SDR·BDR 조직을 만들고, 기회를 발굴하는 역할과 계약을 담당하는 역할을 나눴습니다. 매출을 예측하는 기준을 세우고 기존 고객도 담당했습니다. 이후 메텔에서는 고객이 원하는 결과에 맞춰 새로운 서비스와 영업 방식을 설계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채권데이터에서 CRO로 일하며, 리드를 만드는 일부터 청구와 수금까지 매출이 이어지는 과정을 봅니다. 레브옵스는 그 현장에서 배운 것을 제 말로 기록하는 개인 매체입니다. 제가 자리를 비워도 다음 사람이 이해하고 이어갈 수 있는 형태로 남기고 싶습니다.

회사별 경력과 맡았던 일 자세히 보기
06

그리고, 앞으로

함께하면 일이 재미있어지는 사람

소를 연구하고 닭을 키우고 보험과 소프트웨어를 팔았습니다. 직장이 바뀔 때마다 하는 일을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대관령에는 부모님과 지금의 아내를 데려갔고, 농장 일을 할 때는 아내가 제가 담당하던 지역을 와봤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아빠의 책상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여줬습니다.

각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 뒤에도 남았습니다. 제가 가장 많이 자랐던 시기를 돌아보면, 저를 키운 사람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저와 대화하고 나니 일이 좀 재미있어졌다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저 자신을 가장 크게 움직이는 것도 재미입니다. 하기 싫던 일에서 시도할 이유를 찾고, 함께 웃으며 다시 해보는 것. 그 마음으로 다음 일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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